벽의 궤적, 4장 중반

112시간 5분. 로이드는 76렙. 4장 이틀째 돌입.

벽의 궤적에서는 벌어지는 사건들이 워낙 다 우중충하다 보니 스토리를 따라 정신 못차리고 플레이하면서도 내가 정말 이 세계를 즐기고 있는 건지, 이 도시와 여기에 사는 사람들을 좋아하기는 하는 건지 의아스러워질 때가 가끔 있었다. 4장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일련의 이벤트들을 보고있으려니 내가 정말 이 도시와 이 사람들에 정이 붙기는 했었던가 보다. 이벤트를 보면 볼 수록 정말이지 속이 상해서... 알캉시엘 무대가 무너지고. 구시가에선 초절정 찌질해진 발드가 깽판을 치고. 행정구 경찰 본부에선 우리 프랑이까지 위험에 처하고. 이벤트를 보면 볼수록 울컥해서 참을 수가 없더라. 게임 나오기 전에 성우 인터뷰에서 프란 성우 맡으신 분이 기억나는 대사에 대한 질문에서 '오네쨩'이 단 한번 다르게 쓰이는 부분이 있다고 했었더랬던가. 그걸 계속 신경쓰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장면이었을 줄이야. 

지부 단말에서 프란 얼굴이랑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낯선 판에 병원 가서 바뀐 얼굴 봤더니 기분이 또 울컥. 우리 프랑이가,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로 우릴 맞아주는데, 맥도 못 추고 피곤하게 앉아 있는 거다. 조그만 SD캐릭터 고개가 픽 꺾이고 바로 잠드는 게 괜히 안쓰러웠다. 내가 프란을 영궤벽궤의 다른 NPC들보다 특별히 아끼고 생각해 왔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같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같은 건물에서 지내는 것도 아닌데 난 얘를 너무 당연하게 언제까지나 같이 할 우리 동료로 여기고 있었다. 프랑이가 없는 상황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2과의 과장님이랑 그 부하인 덜렁이 형사도. 끝까지 못미더운 덜렁이 선배 역할 NPC일 줄 알았는데 이제 그러지 못하게 되었구나. 알캉시엘 리뉴얼 공연도 다시는 볼 수 없겠네. 이리아도 리샤도 없는 알캉시엘은 어떻게 되려나.

반파된 구시가를 빙 돌다 텅 빈 사벨바이퍼 본부에 들어갔더니 디노가 혼자서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이전엔 바이버 선배 애들이 행방불명된 디노를 찾으러 다녔었는데 이젠 디노 혼자만 남았다. 병원 간 김에 바이퍼 애들 어쩌고 있나 체크하러 가봤겠죠. 난리가 나기 직전까지도 발드에 그리 목매달던 애들이 풀이 확 죽어서는 이제 발드를 욕하고 있었다. 코우키는 만나지도 못했다. 우우 우리 코우키. 디노가 축제때 혼자 집보고 있으면 선물 사다주던 아이였는데. 발드 잡심부름도 잘 하던 아이였는데. 나인발리의 아슈리와 징고는 크로스벨을 떠나겠다고 하고. 새로 바뀐 bgm을 들으면서 구시가와 환락가를 돌고 있자면 처연한 기분이 된다. 무너진 집들이랑 새까맣게 그을린 길바닥을 볼 때마다 4장 초반의 불안불안하던 이벤트가 생각난다. 관광객들도 다들 떠나고. 불안살벌한 크로스벨. 영궤 플레이하기 전 천공궤적에서 건너건너 이야기로만 듣던 시절에 크로스벨의 이미지는 무법천지의 살벌한 동네였었다. 이제야 그때 이미지랑 비슷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려 열심히 움직이는 마을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영전을 플레이하는 게 맞긴 하구나. 구시가 부흥 퀘스트에선 내 돈 아낌없이 털어 식재를 샀다. 챌리티 이벤트 퀘스트도 꽤 즐거웠다. 미인대회 누구를 내보낼래 하는 질문에 선택지로 지원과 애들이 다 올라와있길래 한참 뒤집어지도록 웃었다. 웃고 웃다 고민하다 란디, 로이드, 와지 셋 다 후보로 올려봤다. 바로 로이한테 짤렸다. 췟 이렇게 바로 잘라버릴 거면 애초에 선택지에 넣질 말라구. 

그리고 운명의 크로스벨. 4장 이틀째.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핳하하핳하하하하하하 이 전개는 미쳤어!!!!!

한 번 사라졌던 흑막 후보가 사라지지도 않고 또 왔네. 그렇죠, 얼굴 멀쩡하고 대놓고 착하고 잘난 사람은 믿으면 안 되는 게임인 거죠. 제국을 의심하라고 대놓고 광고하고 있으니 절대로 흑막이 제국이 될 수는 없는 게임인 거죠. 너무 의심스러우니까 당신들이 한탕 크게 쳐 주리라는 것만큼은 의심없이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일치고 들지 몰랐지. 쿠테타와 함께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도심에서 그 난리를 치고 내가 사랑하던 NPC들 아프게 한 건 주민투표 호응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나보다 하고 이해해 줄게. 아님 도심의 종을 남몰래 탈취하기 위해서였다거나. 낄낄낄. IBC를 폭파시킨 이유는 뭡니까? 증거라도 날리려고? 오르키스 타워에 전력 집중시키려고? 역시 신 시청사는 지하 40층에서 지상 40층까지 이어지는 던젼이었던 거죠? 나 시장님이나 따님이랑 싸우는 건 별 걱정 안되는데 짱 잘나신 아리오스님이랑 싸우게 될 건 좀 많이 걱정된단 말야. 진퇴양난이다. 여기서 물러서면 제국이랑 공화국한테 고대로 먹힐 것 같다. 그렇다고 대통령님-_- 하자는 대로 냅두자니 안될 말씀이다. 이래저래 처음부터 끝까지 속상하게만 굴러가는 게임이다.

뭐, 속상하긴 해도 싫은 건 아니고요. 영궤 벽궤는 배경이 무조건 선하고 주인공들에게 호의적이기만 한 세상은 아니게 된 덕분에 이야기가 훨신 세련되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전답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을런지 모르겠지만. 거듭 말하지만 영궤벽궤 스토리에서 로이드의 타라시 속성만 빠진다면 난 이 이야기를 아주아주아주 사랑해줄 수 있었을 거야. 

와지와 노엘이 떠났다. 떠나기 전에 많이 좀 써줄걸. 4장 첫날이 노엘은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열심히 데리고 다녔는데 와지는 생각도 못했었다. 둘 다 떠나기 전에 에니그마 커버까지 챙겨줄 수 있었어서 다행이었다. 



***
크로스벨이란 배경에서 특무지원과 애들을 데리고 잘 짜여진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건 결국 영궤까지가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영궤의 메인 스토리는 조그만 신생 경찰 조직이 부패한 크로스벨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자립하는 이야기였지. 벽이 있을지언정 주인공네들이 해볼만 한 여지가 있는 범위 내였다. 벽궤에서는 배경과 인물이 따로 놀고 있잖아. 배경에서는 주변 나라들 사이에 낀 조그만 도시국가 크로스벨의 존망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데 주인공들은 거기에 개입하기에는 너무너무도 작은 일개 경찰조직일 뿐이다. 배경은 긴박감있게 흘러가는데 주인공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상황 흘러가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그래서 속상한지도 모르겠다. 상황은 급박한데 나는 긴장감이 없다. 뭘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나중에 어찌어찌 상황이 해결된다 해도 그건 우리 애들이 해낸 일이 아닐 것 같다. 생각해보니 2장에서도 3장에서도 뭔가 사건이 해결되는 것 같아 보이긴 해도 제대로 해결되었던 건 하나도 없었구나. 역으로 당하기만 했었네. 

4장 이틀째 첫 이벤트만 본 상태로 게임 더 진행하기 전에 슥삭슥삭 추가.

벽의 궤적, 3장 종료

플레이타임 101시간 59분. 로이드는 73레벨. 수없이 로드와 빨리감기를 반복하면서도 플레이타임이 이모냥이라니 나 쫌 대단한듯. 4장은 클라이막스부터 시작하네요. 빨리 게임하러 가야하므로 기록은 대충대충.

가난하다. 돈이 모자라다. 도력차 파츠는 필요한 것만 먼저 사줬고 장비도 대충대충. 도력제품점에서 파는 마스터 쿼츠는 손도 못댔고요. 뭐, 지금 들고 있는 쿼츠들 마스터 찍어주기에도 아직 한참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으니까 상관없나. 에니그마 커버도 손 못댔고. 이제 겨우 가구들만 전원 맞춰줬다. 퀘스트 하나 깨고 받는 돈이 삼천인데 애들 가구 하나 사주는 게 오천이래. 에잇. 돈으로 동료들과 인연을 쌓는 더러운 세상!

옙 나 삐졌슴다. 인터미션 하면서 삐졌어요. 

인터미션 이벤트 요소요소들만 따져보면 꽤 재미있는 구성이긴 했었는데 말여요. 로이드의 사람꼬시기, 로이드의 플래그 심기 이벤트들을 한데 몰아 구경하고 있으려니 기분이 복잡미묘. 아무래도 요 영궤벽궤 시리즈의 최대의 단점은 로이드를 공략왕으로 설정했다는 거 같아. 로이드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 집중하고 보다가도 로이드 머리 위로 땡땡땡 아이콘이 뜨고 bgm이 바뀌면서 로이드가 연설을 하기 시작하면 흥이 깨진다. 플래그가 죄 로이드로 집중되어 있으니까 로이드가 뭔 말을 해도 진심어린 말이 아니라 사람 꼬시는 말로 들려요. 로이드의 진의와는 상관없이 그 상황을 사람 꼬시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되어버려요. 로이드는 원래 그런 애라 하더라도 로이드의 그렇고 그런 말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청중들은 또 뭐냐. 로이드가 한마디 할 때마다 별 일도 아닌 것 같은데도 뒤에 선 에리나 노엘이나 티오 등등이 아련한 눈을 하며 로이드... 로이드씨... 한마디씩 하는 상황에 너무도 익숙해져가는 요즘. 이제 내 몰입을 방해하는 게 로이드인지 로이드 뒤에 선 여자애들인지도 아리송해진 요즈음. 

인터미션에선 세이브로드질 하지 말고 그냥 좋아하는 애 한명씩만 골라서 놀이기구 타면서 이벤트 보고 넘어가는 게 더 좋았을 뻔 했어요. 그랬어야 로이드가 공략 오브 더 공략왕으로 보이지도 않고, 각각의 이벤트들도 더 소중했을 것 같다. 근데 플레이어 마음이 그렇게 안되잖아. 우리 귀여운 동료 애들 각각 무슨 사정 있는지 무슨 얘기 하는지 다 보고 싶은게 플레이어 맘이잖아. 인터미션 플레이하면서는 주말 내내 세이브로드질만 하고 있었다. 점집 가서 애들 혈액형 다 모았다. 세이브로드질 하면서 호러코스터는 세시간 걸려 완벽클리어 하고 레코드 하나 땄다. 대관람차랑 거울성까지 가서는 좀 지쳐서 지원과 애들 중심으로 보고 싶은 애들만 대충 보긴 했다. 알캉시엘 누님들도 좋아하긴 하지만 패스... 힘들어... 

A형 - 에리, 노엘, 세실, 슈리
B형 - 란디, 키아, 이리아
O형 - 로이드, 프랑, 리샤
AB형 - 티오, 와지

다들 굉장히 전형적이어서 딱히 코멘트할 거리도 없고요. 세이브로드질의 최종 선택지로 점집은 와지와 함께 가고, 관람차는 키아와 함께 가고, 호러코스터는 에리와 함께, 거울성은 두번 란디와 티오와 갔습니다. 한 사람만 선택하기엔 사랑이 넘쳐서 지원과 애들 모두 끌고 가는 나. 노엘만 빠뜨려서 미안. 그래도 수영복 찢은 범인 잡는 퀘스트는 노엘과 함께했으니 괜찮을거야. 불꽃놀이를 같이 구경한 사람은 란디. 란디에게 선물 받고 선물준 건 좀 흐뭇. 테마파크 관람하면서 밋시 굳즈 잔뜩 사재기하느라 돈이 없어서 정작 선물 줄 때 되니 빈털터리라 로드질로 테마파크 이벤트 한번씩 더 본 건 안흐뭇.

인터미션에서 가장 주목할만 했던 건 마리아벨이 얼굴그래픽 있고 성우도 있어서 요주의 인물 등극하더란 거. 그리고 테마파크 거울성 꼭대기에 종이 생기면서 종과 함께하는 크로스벨 맵 크로스 지형 완성되었더란 거.  

3장은 먹고살기 바빠 띄엄띄엄 플레이했더니 잘 생각이 안 나네.
11월 내내 3장만 했다.

발드. 아오 우리 발드. 구시가 체이스배틀 하던 시절이 좋았지. 꽤 좋아했었는데 귀엽지 않게 찌질해져서 슬프다. 뒤로 갈수록 더 찌질해져 등장할 것 같아서 더욱 슬펐다. 찌질해진 발드에게 패배 처리되기 싫어서 발드랑 싸우는 데도 세 번쯤 세이브 로드. 바이퍼의 똘마니들이 더 의젓해보일 지경. 두목이 애들 다 버리고 튀었는데도 얘들은 매일같이 발드 걱정이다. 구시가에 발드 소식 확인하러 갔는데, 늘상 이그니스에서 노래부르고 소리나 지르던 루가노프가 우리 애들 앞에서 카리스마 뿜는 모습 보고 조금 반할 뻔.

3장 초반은 텐션이 그리 높지 않더니 장 막판으로 갈 수록 흥미진진해졌다. 셋째날 이벤트에서부터 넷째날까지는 몰아치듯 플레이했다. 란디의 사연은 괜히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서 좋았다. 로이드가 란디 멱살 잡고 늘어져서 좋았다. 란디가 움직이는 이유가 책임감이나 의리나 동료를 위해서 따위가 아니라 자기혐오, 자기만족을 위해서였던 것도 좋았고, 작중에서 란디를 갈 길 한참 남은 어린애 취급하는 것도 좋았다. 공궤에선 유격사중에서도 한참 어린 편인 세라자드나 좌충우돌 만년 소년인 애거트가 까마득한 선배처럼 그러져서 찜찜했었으니까. 란디와의 이벤트가 되면 아무래도 로이드가 하는 대사들을 연애감정 배제하고 보게 되어서 이벤트 몰입하기 한결 편해진다. 용서한다는 대사도 좋았다.  

하지만 용서한다는 말은 좋으면서도 미묘했다. 너무 편한 대답인 것 같아서 기분이 복잡했다. 아무리 그렇고 그런 세계관에 동고동락 같이 한 동료라고 해도 그 사람의 과거를 용서한다 한 마디로 다 잘 된거다 처리하는 게 옳은 건가. 사람은 받아들일지언정 그 사람의 죄는 용서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용서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쓰는 건 아닌가. 좀만 더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만큼 저들 사이의 신뢰가 두터운 거라 받아들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요. 저 상황을 처리하기에 가장 그럴듯 한 대사인 것도 맞는데, 동시에 별 고민 없이 나온 대사인 것 같아서 좋으면서도 찜찜했다.

그래도 란디가 오래도록 파티에서 벗어나 있는 건 아니라서 다행. 진짜 다행. 란디가 좋은 악세사리는 다 들고 갔던데다 난 란디 없이는 몬스터의 후방을 노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고요.  

벽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서브 퀘스트들이 굉장히 탄탄해졌다는 거다. 서브퀘스트들이 어지간한 이벤트 몫지 않은 볼륨이 되었다. 알모리카 마을 사기사건이라거나, 서 크로스벨가도 레이스라거나, 짜가 브랜드업자 리벤지 퀘스트라거나. 짜가 브랜드업자 퀘스트는 꺅꺅거리면서 정말 재미있게 했다. 할머니가 기차 위로 뛰어내리고 액션영화 찍는데 깜딱. 할머니 잡는 데는 와지 데려갔어요. 원조 지원과 애들은 저 할머니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다 와지는 요 이벤트를 꽤 즐거워할 것 같아서. 

서브퀘스트가 워낙 훌륭해진 나머지 스토리 이벤트들이 덜 임팩트있어 보인다는 거. 이건 기뻐해야 할 일인가 슬퍼해야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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